집단 학살: ‘이번엔 다르다’는 치명적인 착각.


우리는 늘 ‘이번만은 다를 거야’라고 속삭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우리는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인류의 가장 어두운 단면 중 하나인 집단 학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특히, 우리가 종종 빠지는 ‘이번엔 다르다’는 치명적인 착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그 착각이 어떻게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이 되는지 깊이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현재에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그 위험한 징후들을 함께 성찰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집단 학살: ‘이번엔 다르다’는 치명적인 착각.

우리는 정말 달라졌을까? 위험한 자기기만의 덫

인간은 놀랍도록 적응력이 강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기기만에 능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수많은 비극을 배우고,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새로운 세대가 도래할 때마다 우리는 자신들이 이전 세대보다 더 개화되고, 더 이성적이며, 더 인간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르다”, “이곳은 다르다”, “지금은 다르다”는 믿음은 우리에게 일종의 안도감을 선사합니다. 고대 로마의 잔혹함이든, 중세의 종교 전쟁이든, 근대의 식민지 착취든, 20세기의 두 번의 세계 대전과 그 속에서 벌어진 홀로코스트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르완다의 대학살이든, 우리는 그것들이 ‘특정 시대’, ‘특정 민족’, ‘특정 이념’의 산물이라고 치부하며 거리를 두곤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인류는 정말로 ‘다르다’고 자신할 만큼 발전했을까요? 우리가 사는 이 21세기에도 인종, 종교, 이념, 정치적 견해 등의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차별받고, 박해받고, 심지어는 학살당하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엔 다르다’는 착각은 사실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불편한 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변에서 들려오는 혐오 발언, 소수자 배척, 특정 집단에 대한 비난과 낙인은 과거의 비극들이 시작될 때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징후들을 보면서도 ‘설마 그 정도까지야…’ 혹은 ‘우리 사회는 그런 수준은 아니야’라며 외면하곤 합니다. 이처럼 안일한 태도가 바로 비극으로 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잔혹한 패턴, 그리고 변치 않는 전조들

집단 학살은 결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불행이 아닙니다. 그것은 치밀하고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 발생하며, 역사는 이 잔혹한 과정이 얼마나 섬뜩하게 반복되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특정 집단을 ‘인간 이하’로 규정하고, 그들을 사회의 모든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하는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됩니다. 혐오 발언은 정당화되고, 차별은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며, 선동적인 프로파간다는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킵니다. 사람들은 서서히 ‘다른’ 집단에 대한 공포와 증오심을 키워나가고, 이는 결국 물리적인 폭력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과정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놀랍도록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명칭 부여, 상징 강요, 재산 몰수, 격리, 추방,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서의 말살… 이 모든 단계들이 매번 똑같은 순서로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그 본질적인 흐름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그들의 인간성을 부정당하고,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애국’이나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다수의 ‘침묵하는 방관자들’이 이러한 과정을 수수방관하거나 심지어는 묵인한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으니 괜찮아’라는 생각은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듭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집단 학살 끔찍한 역사 반복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는 곧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사회 구조의 취약성이 결합될 때 언제든 재현될 수 있는 보편적인 패턴인 것입니다.

침묵과 망각이 불러오는 대가, 그리고 우리의 책임

‘이번엔 다르다’는 착각이 치명적인 이유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경계심을 늦추고, 필요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작은 불씨가 큰불이 될 때까지 ‘설마’를 외치며 방관하다 보면, 어느새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빅터 프랑클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우리는 인간에게는 그들이 기대할 만한 모든 것이 박탈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 하나, 즉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인간의 마지막 자유는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침묵할 것인지 목소리를 낼 것인지, 방관할 것인지 행동할 것인지 선택할 자유가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우리가 과거의 비극을 망각하거나, ‘남의 일’로 치부하며 무관심할 때, 우리는 미래의 비극에 대한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집단 학살의 끔찍한 역사는 단순히 고통받는 이들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실패이자 오점입니다. 우리가 ‘이번엔 다르다’는 치명적인 착각에 빠져 침묵한다면, 집단 학살 끔찍한 역사 반복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침묵과 방관은 단순한 무관심을 넘어, 인류가 배워야 할 교훈을 외면하는 행위이며, 결국은 우리 자신에게 더 큰 대가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 세대에게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의와 차별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잔혹한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발전과 함께 셀 수 없는 비극으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비극의 정점에는 언제나 집단 학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술적으로는 진보했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본성 안에 내재된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다르다’는 안일한 생각은 결코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을 뿌리게 할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역사를 배우는 가장 큰 이유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미래를 예견하는 지표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어두운 페이지들을 단순히 읽어 넘기는 것을 넘어, 그 속에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돌아보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인종, 종교, 이념, 사회적 배경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려는 노력, 그리고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용기가 바로 집단 학살 끔찍한 역사 반복을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그리고 우리 사회의 모든 시스템 속에 공감과 정의, 그리고 인간애의 가치가 깊이 뿌리내릴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희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